몇 년 전, 환기미술관에 처음 방문했을 때 김환기 선생님의 작품들을 마주하고 받았던 충격을 여전히 기억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환기 선생님과 그 작품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었음에도 작품이 주는 어떤 묘한 힘 때문에 눈물이 자꾸 났다.
하지만 그 충격은 그의 작품을 '처음' 마주했기 때문이 아니었고, 사실 언제 보아도 첫눈에 울컥하게 되는 무언가가 있다.
부족하기만 한 내 표현능력과 식견으로 그게 무엇인지 설명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어제 환기미술관에 방문해서 구입한 책 <그림에 부치는 시(詩)>에 그 이유가 조금이나마 담겨있는 듯 하다.
그의 작품은 시(詩)에 다름없고, 그의 언어도 시(詩) 그 자체이다.
환기미술관 카탈로그 내용을 인용하자면, '수화(樹話) 김환기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 감흥을 고유의 조형언어로 승화시켜 서정적이며 현대적인 조형 시(詩)를 구현하였다.' 한눈에 뭉클한 감동을 전하는 그 힘은, 바로 '그의 내밀한 조형 사고'에 있다.
어떤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지 확실히 알고 있다면, 재료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그의 작품을 보며 깨달았다.
"미술은 철학도 미학도 아니다.
하늘, 바다, 산, 바위처럼 있는거다.
꽃의 개념이 생기기 전,
꽃이란 이름이 있기 전을 생각해 보다.
막연한 추상일 뿐이다." - 김환기
초창기 추상미술의 선구자로서 서구 모더니즘을 한국화 한 그의 말이다.
직선과 곡선, 면, 기하학적 형태, 색채, 리듬으로 구성된 그의 작품을 통해 조형의 자율적 표현을 느껴볼 수가 있다,
내 예술은 하나 변하지가 않았소.
여전히 항아리를 그리고 있는데
이러다간 종생 항아리 귀신만 될 것 같소.
예술에는 노래가 담겨야 할 것 같소.
거장들의 작품에는 모두가 강력한 노래가 있구려.
지금까지 내가 부르던 노래가 무엇이었다는 것을
나는 여기 와서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 같소.
밝은 태양을 파리에 와서 알아진 셈. - 김환기, 파리 통신
또한 1950년대 김환기 선생님의 작품을 살펴보면, 그 주제가 매우 전통적이다.
달, 도자기, 산, 강, 나목(裸木), 꽃, 여인 등의 소재를 통해 한국적인 미와 정서를 표현한 그의 작품은,
보는 우리로 하여금 작품과 '연결되어있다', 혹은 '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 새와 달과 산을 십수 년 그려 왔으나
아직도 이런 것을 더 그리고 싶다.
브라크도 새를 많이 그리고
부오와 미로도 달을 많이 그리지만
내 새와 내 달과는 아주 다르다.
프랑스에는 달보고 바보라는 말이 있다.
그들은 달보다는 태양을 사랑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달은 동양의 것일까.
깨뜨려지는 날에는
나도 태양이나 별을 그리게 될지도 모른다. - 김환기, 하늘
출처 및 참고문헌 - <그림에 부치는 시(詩)> _환기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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